아이 방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치우고 아이가 읽지 않는 책을 옮겼다. 가구 배치를 바꾸었더니 좁아 보이던 방에 여유 공간이 생겼다.
우연히 그림 하나를 사들였는데 그걸 아이 방에 걸어주고 싶었다. 그림을 걸려면 여백의 공간이 필요하고 그림이 잘 보이려면 주변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림의 자리를 챙기다 보니 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조금만 힘을 쓰면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 방치했구나 싶었다.
말끔히 정돈되어 여유 공간이 생긴 방이 내 마음 같았다. 편안하고 즐겁게 생활하면서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과는 다른 생각과 상상이 자라날지도 모르고. 물론 정리된 방을 보고 가장 기뻐한 건 딸아이였다. 그림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가족이 사는 집을 갤러리로 씁니다
삶에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는 책이 있다.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강언덕, 2025년 5월 출간)가 내겐 그랬다. 집뿐만 아니라 일과 삶까지도 힘닿는 대로 잘 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삶을 정돈해 여백을 만들면 타인과 세상을 향한 문 하나를 그려볼 수 있다고, 용기내어 그 문을 열면 뜻밖의 연결로 삶이 확장될 거라고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강언덕 작가는 자신과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을 갤러리로 바꾸어 사람들에게 개방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저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다년간 일했으며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둔 뒤에도 여러 문화 정책 연구에 참여하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 관련한 일을 지속할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던 차에 그림을 구매해 집에 걸었고 그걸 본 지인의 관심에 그들의 그림 구매를 위한 매개자 역할을 자처해 나섰다.
그림이 걸려 있어야 하는 곳은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 삶의 맥락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그림의 최종 종착지는 미술관이 아니라 결국 집이라는 것을 말이다. -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 26쪽
저자는 그랬던 경험을 통해 그림의 종착지가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작가와 구매자 사이 '매개자'로서의 역할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경력 단절 여성으로 저자가 머물러야 하는 장소가 집이었고 마침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어 더욱 집을 떠날 수 없는 상황. 저자에게서 '집'이라는 공간을 갤러리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싹텄다.
집을 갤러리로 쓰겠다는 말을 처음 들은 저자의 남편은 이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당신 미쳤어? 제정신이야?"(31쪽) 그랬던 남편은 시간이 흘러 마이너스 통장으로 좋아하는 그림을 사는 그림 애호가로 변모한다. 하우스갤러리 운영은 성공적이었고 그 집은 저자의 삶뿐만 아니라 그림 작가들과 관람객을 연결하는 장소, 저자의 꿈과 작가들, 그림 애호가들의 꿈을 실현해주는 장소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