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북 진안 마이산의 진솔한 풍경을 기다리며 살아온 정길웅 사진작가와 함께 그의 산속 움막을 찾아서 여행했다. 그는 마이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산비탈에 움막을 설치하고 카메라와 생활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는 사흘 밤낮을 움막에서 마이산을 지켜보다가, 기자 등 방문객이 온다는 시간에 맞추어 산에서 내려왔다.
그는 진정한 마이산의 산지기(산을 지키는 사람)라 불릴 만하다. 진안읍에 자리한 그의 집 마당에는 목련 나무가 무성한 잎새에 빗줄기를 맞으며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집은 세상과 연결하며 산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 같았다. 진정한 그의 집은 마이산을 바라보는 산비탈의 여러 움막이 아닐까? 산속 움막은 기다림 속에 희망이 싹트는 현재와 미래의 터전이다. 그의 집은 사진 파일을 쌓아 놓은 과거일 뿐이었다.
정길웅 작가는 사진에 입문할 때, 일본의 유명한 사진작가인 마에다 신조(1922~1998)를 사숙하였다. 마에다 신조의 사진에 표현된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 지역 언덕은 이국적인 풍경과 색감으로 출렁였다. 정길웅 작가는 1980년대 후반 마에다 신조의 사진첩을 구했다. 사진 아래 기록된 데이터를 안 보고 조리개 셔터 노출을 짐작하면서 공부했다. 사진은 빼기의 예술이라는 것을 터득하였다.
사진병으로 제대하고, 진안에서 사진관을 개업했다. 사진관에 스튜디오라고 이름 붙이며, 장밋빛 포부를 키웠다. 그러나 필름으로 사진 기법을 익히고 자신감 있었던 작가는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되면서 실의에 빠졌다.
이때 우연한 일본 여행이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의 남부에서 북부를 향하여 여행하면서 마에다 신조의 비에이 구릉을 찾아갔다. 마에다 신조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에서 마음에 그리던 사진들을 보니 눈물이 났다고 한다.
정길웅 작가는 결심하였다. 이제 죽기 살기로 한번 해봐야겠다. 나는 마이산만 바라보며 사진을 찍겠다. 자신이 있었다. 그는 사진을 보는 눈이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그만의 앵글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심은 무명의 예술가로서, 가난과 고통의 기나긴 생활을 선택한 첫걸음이었다. 40여 년은 한순간처럼 스쳐 지나갔다.
도로가 끊긴 곳에서 풀숲을 헤치고, 작가가 앞장서서 부귀산(806m) 자락 움막으로 올라갔다. 길 없는 산비탈, 마이산을 조망하는 움막에 오르내리면서 반복된 작가의 발자국이 다져져서 산길을 내었다. 굴참나무 숲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 빗물은 용담댐으로 흘러들어 금강으로 흐른다.
움막에 도착했다. 남쪽으로 5km 거리에 마이산이 구름 아래 있다. 움막 바닥은 직사각형(3m×4m)이고, 맞배지붕 형태로, 나무로 골격을 조립하고 비닐을 붙여 상부 구조(높이 2m)를 세워 내부 공간을 확보했다. 움막 앞뒤로 차광막까지 설치하여 생활 공간을 넓혔다. 이 움막은 지은 지 3년 되었다고 한다.
하늘에 가득한 구름은 조금씩 흐른다.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추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조용하게 우뚝 솟아 있다. 마이산을 향하여 지표면에서 피어오른 연무가 흘러 모여든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도 마이산과 옆으로 이어진 호남정맥 줄기를 연무가 못 넘어간다고 한다. 지표면에 붙어서 바람을 따라 마이산까지 흘러온 구름이 마이산을 넘지 못하고, 대부분 흩어져 없어진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리 높지도 않은 마이산을 넘지 못하고 흩어진 구름과 바람은 와류를 이루기도 한다. 마이산의 역고드름이 이러한 국지적인 기상 현상과 연관된 듯하다. 마령과 백운 쪽, 용담 쪽, 전주와 진안 쪽 기단이 서로 다르다. 이 세 방향에서 마이산 방향으로 구름이 바람에 흘러와도 다른 쪽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마이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자연 현상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마이산 북부 관광단지 안에 있는 흑돼지 맛집을 찾았다. 진안고원의 흑돼지는 우리나라 토종돼지로 '깜도야'라고도 한다. 우수한 육질, 독특한 향과 맛을 자랑한다.
정길웅 작가가 마이산 사진 연구회 활동하는 제자들과 자주 찾는 음식점이라고 한다. 작가가 제자들과 출사를 나오면, 제자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둘러보기만 한다. 오늘은 자네가 장원이네.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면 어떤 사진이 찍혔을지 그냥 알 수 있다.
정길웅 작가와 제자들이 공감하는 원판 불변의 법칙. 정길웅 작가는 고등학교 학생 때부터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현상하고 인화하였다. 촬영 후 보정할 필요가 없었다. 전체 내용보기